미투운동 시작은 미국 뉴욕타임스지가 “영화계 거물 하비 와인스틴이 지위를 이용해 여배우와 업계 종사자를 성폭행해 왔다”고 보도한 일이었다. 이후 며칠 사이 지구상의 거물들이 줄줄이 사라졌다. ‘하비 효과’라는 말도 나왔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실명 폭로’로 우리 사회에도 ‘성폭력 고발’ 둑이 터졌다.
실상은 너절하고 추악했다. 진보라더니, 교수라더니, 배고픈 예술가라더니, 성직자라더니, 알량한 권력으로 여성을 유린해 왔다. 짐작은 했지만 차마 들추지 못했던 일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드러났다.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가 자살했다. 안타깝다. 하지만 ‘미투’를 멈출 명분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곧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모든 ‘미투’는 정말 정의로운가.
‘ 미투운동 ‘은 사회적 약자가 선택한 자해적 응징법이다. 적장을 안고 뛰어내린 ‘논개’의 전법을 닮았다. 논개 손에 죽은 적장의 나라에도 ‘가미카제’ 전법이 있다. 미투는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배척을 전제로 한다. ‘혐의-수사-기소’의 수순 대신 상대를 바로 여론재판으로 ‘명예 사형’시킨다. 사적 보복, ‘린치’ 성향도 있다. 그럼에도 세상이 ‘미투’를 지지하는 건, 그 피해가 너무 넓고 깊기 때문이다. 적을 베려 제 심장까지 찌르는 그 마음을 세상이 알아주는 것이다.
지금은 ‘미투 해일’ 수준이다. 해일은 가려서 덮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 빵과 쓰레기를 한 번에 다 쓸어버린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정식 처형된 사람은 4만~5만명이지만, 사적 처형으로 100만명이 넘게 죽었다는 추정도 있다. ‘거의 혁명적’ 상황에 이런 ‘부수적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눈감아야 하는 건가? 대(大)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70년대식 개발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여자는 수백 년을 당했는데 고작 두어 달 갖고 무슨 난리냐”며 모른 척해야 할까? ‘동시대 남성’에게 과거의 감정까지 ‘대속’시키는 건 온당치 않다.
‘남성’이 하나의 가치관으로 살지 않듯, ‘여성’도 그렇다. 그래서 ‘미투’를 오염시키는 여성도 나온다. ‘익명의 피해자 A씨’를 다룬 기사를 읽다 보면, 최소한의 팩트 체크를 했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두 사람 사이에 ‘A B C D E’의 사건이 있었는데, ‘A B’만 언론에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양아치와 강간범은 분명히 다르다. 이성적으로 보자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보수 남성들이 가해자였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진보 인사들이 진영 보호를 위해 ‘논리적 미투’를 말하는 건 역겹지만, 타당한 구석도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비대칭성’은 생각해 볼 문제다. 익명의 피해자가 ‘호명’하는 순간 그는 바로 매장된다. ‘익명이라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온다. ‘힘의 대칭’이 필요한 건 맞다. 미국 ‘미투’는 거의 대부분 실명이다. 그걸로 신뢰도가 높아진다. ‘익명’이 필요한 이들도 있다.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의 종사자나 학생들에게 실명을 권할 순 없다. 피해자가 익명이면 가해자도 익명으로 처리되는 게 공평하다. ‘익명’을 ‘무책임’의 방패로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잃으면 미투는 곧 반격당한다.
“남자의 자구책은 ‘펜스룰(일터에서 여성과 거리 두기)’뿐”이라는 목소리도 그중의 하나다. ‘미투 운동’이 ‘남녀칠세부동석’을 부활시키는 이 아이러니.
성폭력은 남녀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다. 직원이 ‘회장님 사모님’을 성추행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나. 무조건 ‘남자 대 여자’ 문제는 아니다. 남자들을 동지로 끌어들이는 미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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